— 직무명은 같아도, 일의 중심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직업은 그대로인데 그 역할이 바뀌고 있는 직업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현재의 직업 세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이 계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매우 오래된 직업 이름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케팅, 기획, 회계, 인사, 영업, 개발, 운영과 같은 직무명은 수십 년 전에도 사용되었고, 지금도 채용 공고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직업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업무 현장을 들여다보면, 같은 직업명이 가리키는 역할의 내용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변화는 직업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방식으로만 진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업은 유지된 채, 그 안에서 사람이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이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직업의 이름보다 역할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구조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기술과 도구의 변화가 역할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직업의 역할이 변화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기술과 도구의 발전입니다. 자동화, 데이터 처리 기술, 협업 플랫폼, 인공지능 기반 도구의 확산은 많은 직업에서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줄이거나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같은 직업이라도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영역은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마케팅 직무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광고 집행이나 홍보물 제작처럼 실행 중심의 업무 비중이 컸다면, 현재는 데이터 해석, 성과 분석, 채널 전략 조정과 같은 판단 중심의 역할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고를 ‘운영하는 사람’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역할’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무명은 동일하지만, 요구되는 사고 방식과 역량의 중심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회계, 재무, 행정 직무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단순 입력이나 정산 작업은 자동화 도구가 처리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사람은 오류 검증, 기준 해석, 내부 관리 체계 유지와 같은 역할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해당 직업이 불필요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맡아야 할 역할이 보다 판단과 관리 쪽으로 이동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무를 오래 수행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변화의 흐름을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전에는 중요했던 업무가 사라지고, 이전에는 부수적인 일이었던 역할이 핵심이 되는 시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역할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자신의 직무가 모호해졌다고 느끼거나, 업무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조직 구조 변화가 역할의 범위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역할 변화의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조직 구조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조직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역할 분담이 명확한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각 직무는 비교적 한정된 범위를 담당했고, 의사결정과 실행, 운영이 분리된 구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직이 슬림화되고,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방식이 확산되면서 하나의 직업이 담당하는 역할의 범위가 확대되거나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기획이나 PM 직무를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가 특히 잘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기획자가 기획만 하고, 운영자가 실행을 담당하며, 최종 의사결정자는 별도로 존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기획이나 PM이 일정 관리, 이해관계자 조율, 문제 해결, 실행 관리까지 함께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업의 이름은 그대로지만, 책임의 밀도와 범위는 훨씬 넓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사, HR, 운영 직무 역시 단순 관리 역할에서 점차 전략적 판단과 개선 역할을 함께 요구받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직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역할을 통합하고, 각 직무에 더 많은 판단과 책임을 부여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같은 직업이라도 회사에 따라 역할의 무게와 기대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직업의 역할 변화는 ‘어려워졌다’거나 ‘편해졌다’는 단순한 평가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역할의 성격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의 종류가 달라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역할 변화는 커리어 판단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직업은 그대로인데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커리어를 평가하고 설명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합니다. 과거에는 직무명과 근속 기간이 경력을 설명하는 주요 기준이었다면, 현재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동일한 직무명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수행한 역할의 내용에 따라 경력의 방향성과 활용 가능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일하게 ‘운영’이라는 직무를 수행했더라도, 단순한 업무 처리와 유지 관리 중심의 역할이었는지, 아니면 프로세스 개선과 문제 해결까지 포함된 역할이었는지에 따라 이후 커리어 선택지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역할의 성격이 커리어의 이동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신입이나 중고신입뿐 아니라, 장기근속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오랫동안 같은 직업을 수행해왔더라도, 그 안에서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자신의 경험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역할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정리해두면, 직무명을 바꾸지 않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수행하고 있는 직업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역할이 강화되고 어떤 역할이 줄어들었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직업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대응이라기보다, 변화된 역할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한 과정에 가깝습니다.
직업이 아니라 역할을 기준으로 바라볼 때
직업은 그대로인데 역할이 바뀌고 있는 현상은, 직업 세계가 불안정해졌다는 신호라기보다는 일의 방식이 보다 세분화되고 재구성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많은 직업은 사라지기보다는, 그 안에서 사람이 맡아야 할 역할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직업의 이름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렵고, 실제 업무 내용과 책임 구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커리어를 설계할 때는 직업명이 유지되는지 여부보다, 그 직업 안에서 어떤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할은 기술 변화 속에서도 계속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영역인지, 조직 구조 변화에도 의미를 유지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강점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직업의 이름은 비교적 천천히 변하지만, 역할은 훨씬 빠르게 변합니다. 이 흐름을 인지하고 역할 중심으로 커리어를 바라볼 때, 직업 변화 속에서도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한 선택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 직업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로 이동할 수 있는가라는 점입니다.